관계를 발현시키는 건축, 포머티브 건축사사무소 고영성, 이성범
 
제주도와는 아무 연고도 없는 ‘육지 사람’이면서, 제주에서의 주거 공간 건축으로 현지인들에게까지 인정받는 핫한 건축가 듀오가 있다. 포머티브 건축사사무소의 공동대표 고영성, 이성범 소장이 그들이다. 고영성 소장이 사무소를 개업하고, 몇 해 뒤 그의 대학원 선배였던 이성범 소장이 합류해 지금의 포머티브 건축사사무소가 만들어졌다. 젊은 감각과 세련된 스타일이 돋보이던 두 사람은 활발하고 장난기 많아보였다. 그러나 유난히 즐거웠던 그 날의 인터뷰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두 사람이 누구보다도 진지하고 확고한 건축 철학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개포동태호빌딩
 
강릉지안이네
 
Q. Formative 건축사사무소라는 사명에 대해

고영성 소장(이하 고). Formative라는 단어는 ‘(성격 등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이라는 뜻의 단어다. 이것은 건축을 하는 데 있어서 결과물 못지 않게 과정도 중요시하는 우리의 건축 철학과 통하는 부분이 있다. 또, Formative라는 단어가 Art와 결합하면 ‘조형 예술’이라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우리도 매번 우리의 건축에 조형성, 예술성을 담고자 하기 때문에 이런 중의적인 함축성을 포함한 단어로 사명을 Formative 건축사사무소로 짓게 됐다.
 
이성범 소장(이하 이). 일반적으로 Form이라고 하면 형태적인 것에 국한된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내재된 의미를 조금 더 깊이 이해하면 또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Formative는 어떤 결과물에 치중된 의미가 아닌, 최종 결과물이 나오기 위한 일련의 과정, 흐름으로 인해 도출되는 결과물까지를 아우르는 의미가 담겼다고 보면 된다.
 
Q. 어떻게 만나서 함께 일하게 되었나?
 
이. 처음에는 한양대학교 건축대학원에서 선후배 관계로 만났다. 나는 학교에 죽치고 먹고 자면서 작업하는 스타일이었고, 고영성 소장은 현장에서 발로 뛰는 경향이 강했다. 그 외에도 성격적인 부분이나 추구하는 방향성이나, 서로의 다른 부분들이 많다 보니까 궁금한 점도 많았다. 그래서 함께 작업도 하고 연구도 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서로 알아가면서 친해졌지만, 그때는 지금처럼 사업까지 같이 하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고. 2011년에 포머티브 건축사사무소를 개소했다. 처음 5년 정도는 혼자 쭉 작업해왔는데, 일이 점점 많아지면서 이전만큼 모든 디테일이나 퀄리티를 챙길 수는 없겠더라. 이렇게 가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되겠다 싶고, 마음이 맞는 믿을만한 사람이 누가 있을까 하다가 이 소장에게 몇 번 넌지시 이야기를 해봤다. 3년 전부터 이성범 소장이 합류해 함께하고 있다.
 
월정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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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건축/디자인에 대한 포머티브 건축사사무소만의 철학이 있다면?

고. 우리는 지금까지 ‘관계의 발현’을 주제로 작업을 해오고 있다. 우리가 설계하는 공간 속에서 사람과 주변 환경과의 관계, 장소와의 관계, 건물과 건물 사이의 관계, 그리고 도시와 건축의 관계를 고려하며 설계를 진행한다.
 
이. 사명에 대한 이야기에서 언급했듯 우리가 작업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형태적인 부분에 머물러있기보다는 디자인의 과정을 중시하고, 거기에 담기는 다양한 의미를 구체화하면서 작업을 하고 있다.
 
Q. 포머티브 건축사사무소에게는 건축물의 사용자(사람), 주변 환경과의 조화, 조형미나 예술성 중에 어느 것이 가장 중요할까?

고. 같은 이야기지만 우리의 건축 설계는 관계를 발현시킬 수 있는 장소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그 안에서 조형성이나 공간적인 재미, 사람, 이런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에 세 가지 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고 소장 말처럼 세 가지 모두 무엇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는 없다. 모든 개념이 굉장히 긴밀하게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에. 정확히는 세 가지 모두 우리가 하는 일련의 디자인 프로세스 안에 묻어있는, 구분이 되어있지 않은 것이라 본다.
 
벽락재
 
연북정연가
 
Q. 제주도 건축의 전문가라 평가 받고 있다.

고. 제주도에서의 첫 작업은 한 농가 주택을 수리했던 프로젝트였는데, 그전까지만 해도 제주 돌집을 수리한다는 것은 엄두도 못 냈고, 작업했던 팀도 하나도 없었다. 포머티브가 처음으로 돌집을 리모델링한 것이 계기가 되어 주목을 받았고, 점점 제주도에서의 작업이 많아지면서 포머티브가 이름을 알리게 됐다. 사실 제주도에서 무언가를 하려는 사람들도 이 점에 대해 익히 알고 있으니, 우리처럼 제주도에서의 작업 이력이 많은 곳을 찾아주기도 한다.
 
본질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건축가들에게는 제주도에서의 작업이 힘들다고 생각한다. 그 힘듦은 환경적인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건축의 프로세스가 육지와는 굉장히 다르다는 데에 있다. 아직까지 그런 부분에 대한 이해가 없던 제주도 작업 초창기에는 정말 현장에서 살다시피 했다.
 
이. 설계단계에서는 크게 문제 되는 부분은 없다. 제주도와 육지의 지리적 특성이나 차이점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지만, 설계단계보다는 구체화되는, 실현되는 과정에서 괴리가 크다. 포머티브의 제주도 진입 초창기에는 고 소장이 터를 닦으면서 고생을 많이 했고, 지금까지 제주도에만 3, 40개 이상의 작업을 하면서 많은 경험들이 쌓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매일 생각지 못한 새로운 변수들이 발생한다.
 
북촌리멤버
 
Q. 가장 자신 있는 유형의 공간 작업, 시도해보고 싶은 유형의 공간이 있나?
 
이. 우선 가장 자신 있는 프로그램은 주거 공간과 펜션이다. 특히 제주도에서의 펜션 작업은 소위 ‘히트’시킬 자신이 있다. 그리고 해보고 싶은 작업은 공공공간. 건축을 이야기하며 공공성을 배제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이끌어내고, 그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있어서 건축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부분에 대한 우리의 해석을 녹여낸 공공 건축 작업을 해보고 싶다.
 
Q. 앞으로의 계획은?
 
이. 우리끼리는 ‘앞으로 5년 안에 포머티브의 사옥을 짓자’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주차도 5대 이상 할 수 있는 사옥으로(웃음). 단순하게 우리가 쾌적한 환경에서 일하고 싶다기보다는, 우리와 일을 하는 사람들이 우리의 생각이나 아이덴티티를 사옥이라는 공간을 통해 느끼게 하고 싶어서다.
 
고. 전에 어떤 교수님께서 ‘그 건축사무소가 좋은 곳인지 궁금하면 그들이 만든 모형이 얼마나 있는지, 어떤 모형을 만들었는지 봐라.’라고 하신 적이 있다. 건축 모형을 보면 건축사무소가 맨 처음부터 건물을 완성하기까지의 전 과정이 담겨있고,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추측해볼 수 있다. 우리도 많은 모형을 가지고 있는데, 이를 멋지게 전시도 해두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건축에 대한 생각과 정체성을 보는 이들에게 각인시킬 수 있는 우리만의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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